이야기
영화 속 그 강, 진짜 청령포였을까? 《왕과 사는 남자》 보기 전에는 단종 하면 솔직히 교과서에서 보던 어린 왕 정도였다.
근데 영화를 보고 나니까 이상하게 왕보다 그냥 열일곱 살짜리 한 사람이 먼저 생각났다. 엄흥도랑 밥 먹고, 장난도 치고, 강가에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 때문인지.
영화를 보고서야 제대로 알게 된 것도 있다. 애초에 단종이 왕위를 잃게 된 건 1453년 계유정난 때문이었다는 것. 숙부 수양대군(훗날 세조)이 김종서·황보인 같은 원로 대신들을 숙청하면서 사실상 권력을 다 가져간 사건이다.
그리고 1456년, 성삼문·박팽년 같은 집현전 출신 신하들이 단종을 다시 왕위에 앉히려다 발각돼서 처형당한다. 이게 그 유명한 '사육신' 사건이다. 이 일 이후로 단종은 완전히 고립된다.
그러니까 영화가 시작되는 1457년 영월 유배는, 이미 몇 년에 걸친 정치적 파국의 마지막 단계였던 셈이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아, 얘 결국 어떻게 되는지 나 알고 있는데…' 싶어서 더 마음이 갔다.

장릉(莊陵), 단종의 능, 영월 · Wikimedia Commons
그래서 영화에 계속 나오던 그 강도 궁금해졌다. 단종이 유배됐던 영월 청령포. 당연히 영화도 여기서 찍었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아니다.
청령포는 문화유산이라 대규모 촬영이 어려워서 제작진이 영월 일대를 돌아다니다가 다른 강가에 마을을 새로 만들었다. 길도 없던 곳이라 촬영하려고 길부터 냈다고 한다.
촬영이 끝난 뒤 세트는 모두 철거됐다. 그러니까 영화 속 엄흥도의 집은 지금 찾아갈 수 없다.
대신 진짜 단종이 갇혀 지냈던 청령포는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고, 세 방향은 강, 뒤는 절벽이다. 사진으로만 봐도 좀 답답하다.
영화 보고 나서 보면 더 그렇다. 저 강을 매일 바라보면서도 건널 수 없었다고 생각하면, 영화에서 단종이 강가에 앉아 있던 장면이 괜히 다시 생각난다.
그리고 그 장면에도 작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단종이 혼자 강가에 앉아 있는 모습은 원래 시나리오에 없었다. 쉬는 시간에 강가에 앉아 있던 박지훈을 스태프가 찍었고, 그 사진을 본 유해진이 "이거 장면으로 한번 찍어보면 어떠냐"고 제안하면서 영화에 들어갔다고 한다.

영월부 관아 터(관풍헌·자규루 소재지, 사적 제534호), 영월 · Wikimedia Commons
알고 나니 그 장면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뭔가 연기하고 있는 왕이라기보다 잠깐 혼자 있고 싶은 어린 사람처럼 보여서.
청령포 안에는 단종이 한양을 바라봤다는 노산대, 정순왕후를 생각하며 돌을 쌓았다고 전해지는 망향탑, 단종의 모습을 지켜봤다는 이야기가 남은 관음송도 있다.
결말까지 스포일러하자면, 단종은 그해 10월 결국 관풍헌에서 사약을 받고 숨을 거둔다. 아무도 시신을 거두려 하지 않던 그 순간, 엄흥도만이 목숨을 걸고 몰래 시신을 수습해 암장한다.
그리고 이 대목이 진짜 소름 돋는 부분인데, 엄흥도가 몰래 묻었던 그 자리가 240여 년 뒤 숙종 때 단종이 복위되면서 정식 왕릉 '장릉'이 된다. 한 사람이 목숨 걸고 지킨 자리가, 결국 시간이 지나 정식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나는 아직 영월에 가본 건 아니지만, 영화 보고 나서는 한번 가보고 싶어졌다. 촬영 인증샷을 찍으러 간다기보다, 단종이 실제로 바라봤다는 그 강을 한번 보고 싶어서.
영화 속 세트는 없어졌지만 그 이야기가 시작된 곳도, 결국 그 이야기가 뒤늦게 인정받은 자리(장릉)도 다 아직 거기 있으니까.
이 장면의 실제 장소
대표 촬영지 TOP5
선돌마을 (강원 영월군 영월읍 방절리)
공식·직접
어라연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거운리)
공식·직접
판운리 섶다리 (강원 영월군 한반도면 판운리)
공식·직접
소나기재 전망대 (강원 영월군 영월읍)
체험시설
청령포 (강원 영월군 남면 광천리)
직접
등장인물과 배우 (43명 중 8명)
전체 인물 관계와 이야기는 지도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왕과 사는 남자의 전체 장소 목록 (34곳)
청령포 (강원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삼면이 서강으로 둘러싸이고 뒤로는 험준한 육육봉이 막아선 "육지 속의 섬". 1457년 6월 단종이 폐위된 뒤 최초로 유배된 곳으로, 지금도 나룻배로만 드나들 수 있다. 다만 영화 속 청령포 장면은 관광지화로 촬영 여건이 맞지 않아 실제로는 인근 선돌마을 세트에서 촬영됐다 — 이곳은 촬영지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진짜 그 일이 있었던 현장이다.
단종어소 (청령포 내)
청령포 안에 복원된 단종의 유배 거처. 내부에는 유배 생활을 재현한 밀랍인형이 전시돼 있어, 열일곱 폐위 왕이 실제로 머물렀던 방의 크기와 적막함을 가늠할 수 있다.
관음송 (청령포 내)
수령 600년, 높이 30m에 이르는 소나무. 단종의 통곡을 "보고(觀) 들었다(音)"는 데서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엄흥도 소나무 (청령포 내)
단종어소 앞, 마치 절을 올리듯 기형적으로 누운 자세로 뿌리내린 소나무. 목숨을 걸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충신 엄흥도의 이름을 따 붙여진 별칭이다.
망향탑 (청령포 내)
단종이 한양에 두고 온 왕비와 어머니를 그리며 돌을 쌓았다고 전해지는 탑. 청령포 뒷산 중턱에 자리해 있다.
단묘유지비 (청령포 내)
단종이 유배 생활을 했던 옛터임을 알리는 비석. 조선 후기, 단종의 억울함이 공식적으로 풀린 뒤 세워졌다.
금표비 (청령포 내)
단종의 유배 당시, 이 경계를 넘지 말라는 뜻으로 세워진 표석. 청령포가 사실상 감금에 가까운 유배지였음을 보여주는 실제 유물이다.
장릉 (강원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유네스코 세계유산)
단종의 능. 엄흥도가 몰래 암장했던 자리가, 240여 년 뒤 숙종대 단종이 왕으로 복위되며 정식 왕릉 "장릉"이 됐다. 서울·경기 밖에 있는 유일한 조선 왕릉이라는 점 자체가 이 죽음의 예외성을 말해준다. 조선왕릉으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관풍헌 (강원 영월군 영월읍 중앙로)
청령포가 장마철 침수 위험에 놓이자 단종이 두 달 만에 옮겨간 영월 관아 객사. 이곳에서 두 달가량을 더 지내다 결국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단종의 마지막 거처이자 죽음의 현장이다.
자규루 (관풍헌 옆, 강원 영월군 영월읍)
원래 이름은 매죽루였으나, 단종이 이 누각에서 "자규사(子規詞)"라는 시를 지은 뒤 자규루로 불리게 됐다. 자규(소쩍새)에 자신의 처지를 빗댄 이 시는 지금도 단종의 슬픔을 대표하는 문학으로 남아 있다.
선돌 (강원 영월군 영월읍 방절리, 영월 10경)
서강 절벽 위에 우뚝 솟은 큰 바위로, 영월 10경 중 하나다. 단종이 청령포로 향하던 유배길이 이 절벽 아래 천변을 따라 이어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선돌마을 (강원 영월군 영월읍 방절리)
영화 제작진이 전국을 뒤진 끝에 청령포와 놀라울 정도로 닮은 물길과 산세를 찾아낸 곳. 실제 청령포는 관광지화로 촬영이 어려워, 이 마을에 옛 청령포를 재현한 세트를 짓고 유배 장면 대부분을 촬영했다. 지도상 "청령포"로 등장하는 장면의 실제 진짜 촬영지다.
소나기재 전망대 (강원 영월군 영월읍)
선돌마을과 서강, 선돌이 어우러진 절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 영화 촬영지 선돌마을 세트를 조망하기에도 가장 좋은 위치다.
어라연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거운리)
기암절벽이 물길을 따라 솟은 동강의 비경. 단종이 유배길에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는 장면이 실제로 이곳에서 촬영됐다.
판운리 섶다리 (강원 영월군 한반도면 판운리)
동강의 명물인 나무와 흙으로 엮은 전통 다리. 매년 겨울에 새로 놓고 여름 장마에 유실되는 것을 반복하는 이 다리가 단종의 유배길 장면 무대로 쓰였다.
배일치재 (강원 영월군 진입로 고갯마루)
단종이 한양에 남겨둔 왕비와 어머니를 그리며 절을 올렸다는 고개. 지금도 고갯마루에는 단종이 절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석상과 비석이 서 있다. 44.5km에 이르는 "단종대왕유배길"의 한 구간이다.
창절서원 (창절사, 강원 영월군 영월읍 팔괴리)
사육신의 넋을 모신 사당에서 출발해, 1828년 순조대 사육신과 함께 엄흥도의 위패까지 모시게 된 서원. 영월에서 사육신을 기리는 대표적 공간이다.
금강공원 (낙화암 옛터, 강원 영월군 영월읍 봉래산)
단종이 승하한 뒤, 그를 모시던 시종들이 강물에 몸을 던졌다고 전해지는 낙화암이 있던 자리. 최근 "봉래산 명소화 사업"으로 경관 보도교와 전망 타워 공사가 진행되며 옛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
창덕궁 (서울 종로구 율곡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단종이 1457년 6월 22일, 영월로 떠나기 위해 궁을 나선 출발지. 정순왕후와의 마지막 이별도 이 근처에서 이뤄졌다고 전해진다. 청령포까지는 7일이 걸리는 고행길이었다.
경복궁 근정전 (서울 종로구 사직로)
세조가 1455년 단종에게 양위를 강요받는 형식으로 즉위한 곳. 계유정난 이후 실권을 완전히 장악한 세조 정권의 상징적 무대다.
사육신공원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와 후대 추가 인정된 김문기까지, 사육신의 묘가 모셔진 곳. 1978년 성역화돼 공원으로 조성됐으며, 사육신 묘는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민절서원 (사육신공원 내)
1681년 숙종이 사육신의 충절을 기려 이 자리에 세운 서원. 사육신묘와 함께 성역화되어 지금의 사육신공원을 이룬다.
정업원구기 (서울 종로구 숭인동)
단종과 이별한 정순왕후가 비구니가 되어 머물렀던 승방 정업원의 옛터. 영조가 후대에 이곳에 비를 세워 그 사실을 기렸다.
청룡사 (서울 종로구 숭인동)
정업원의 후신이 된 사찰. 단종이 영월로 떠나기 전, 이 절의 우화루에서 정순왕후와 마지막 이별을 했다고 전해진다.
동망봉 (서울 종로구 숭인동, 낙산 지봉)
정순왕후가 매일 오르내리며 영월 쪽을 바라보고 단종을 그리워하며 통곡했다는 봉우리. 봉우리 바위에는 "東望峯(동망봉)"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자지동천 (서울 종로구 숭인동)
정순왕후가 생계를 위해 옷감에 자줏빛 물을 들였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우물터. 왕비였던 그가 겪은 유배 이후의 궁핍한 삶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사릉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 유네스코 세계유산)
정순왕후의 능. 64년을 홀로 살다 세상을 떠난 그는 단종과 함께 묻히지 못하고 이곳에 따로 묻혔다. 조선왕릉으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금성단 (경북 영주시 순흥면)
금성대군이 유배 중 순흥부사 이보흠과 함께 단종 복위를 도모했던 곳. 거사가 발각되며 실패한 이 사건을 "정축지변"이라 하며, 결국 순흥부 전체가 폐부되고 많은 주민이 함께 화를 입었다. 영조 18년, 금성대군의 의로운 죽음을 기리기 위해 금성단이 세워졌다.
강화도 (인천 강화군)
계유정난 이후 안평대군이 체포되어 유배됐다가 결국 사사된 섬. 시·서·화에 모두 능해 "삼절"이라 불리던 왕자가 정치적 숙청의 희생양이 된 현장이다.
낙빈서원(육신사)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리)
사육신을 모신 대구 지역의 사당 "육신사"가 있는 서원. 1691년 낙빈서원으로 건립돼 지금까지 사육신에 대한 제향이 이어지고 있다.
충절사 (경북 문경시)
단종의 시신을 몰래 수습한 엄흥도가 영월을 떠나 은둔한 곳으로 전해지는 문경에,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
동학사 (충남 공주시 반포면, 계룡산)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가 영월을 떠나 이곳에서 단종의 삼년상을 치렀다고 전해지는 사찰. 계룡산 자락에 자리한 유서 깊은 절이다.
성삼문 선생 유허지 (충남 홍성군 홍북읍, 노은서원)
성삼문의 외가가 있던, 그가 태어난 집터. 1676년 사우가 세워졌고, 이후 박팽년·이개·유성원·하위지·유응부까지 추가로 배향되며 "노은서원"으로 불리게 됐다. 사당 충문사가 남아 있다.
서산서원 (경북 상주시)
생육신 6인 — 김시습·원호·이맹전·조려·성담수·남효온 — 을 모두 배향한 서원. 조려가 가장 먼저 배향됐고, 숙종대인 1706년 나머지 다섯 명도 함께 모셔지며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